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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의 의미와 역사, 백골단의 활동사례,명칭의유래, 그리고 최근 논란

by 기본의 정석 2025. 1. 10.

백골단의 의미와 역사-백골단 활동사례-명칭의 유래-백골단의 역사정배경-백골단 부활

 

최근 정치권에서 '백골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반공청년단'이라는 단체의 기자회견을 주선했는데, 이들이 스스로를 '백골단'이라고 칭했기 때문입니다. '백골단'은 과거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시위 진압 임무를 수행했던 경찰 부대를 일컫는 별칭입니다. 이 글에서는 '백골단'의 의미, 역사적 배경, 구체적인 활동 사례, 그리고 왜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또한 최근 '백골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소환된 맥락도 짚어보겠습니다.

백골단이란 무엇인가?

백골단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사복 차림으로 시위 진압을 했던 전의경, 직원 기동대원을 통틀어 일컫는 별칭입니다. 이들은 청색 자켓과 청바지를 입고, 흰색 헬멧, 방패, 곤봉 등으로 무장한 채 시위대를 진압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아니었지만, 흰색 헬멧의 모습이 해골(백골)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백골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당시 시위대 측에서 이들을 '백골단'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복 경찰", "시위 진압 부대" 등으로도 불렸습니다. 다만, "백골단"이라는 단어는 경찰 측이 아닌 시위대 측에서 만들어져 대중에 퍼졌기 때문에 대중들이 가진 백골단의 이미지와 실제 사복체포조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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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의 역사적 배경

백골단은 19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당시 정권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요구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진압 부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따라 사복 차림의 경찰 부대를 시위 현장에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8월 1일 서울시장 명의로 모집된 사복체포조는 경찰들 중에서 대부분 무술 유단자 및 특전사와 해병대 수색대 출신들이 특채되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들이 흰색 헬멧에 청색 자켓 복장을 착용하여 '백골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전, 의경 출신들의 증언, 사진, 영상 자료 등을 종합해 보면, 실제로는 1985년 하반기쯤부터 전투경찰이나 직업경찰관(일명 직원)들로 구성된 사복체포조 부대, 즉 사복중대들이 서울시경 산하에 창설되어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1986년까지 서울기동대 산하에 전경사복중대, 직원사복중대들이 증설되고 전국적으로 형사기동대(일명 형기대)가 창설되면서 이들 역시 사복체포조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백골단의 구체적인 활동 사례

백골단은 시위 현장에서 과격하고 폭력적인 진압 방식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다음은 백골단의 구체적인 활동 사례들입니다.

 

 

백골단-백골단의 구체적인 활동사례-백골단 악명- 백골단 시위현장

폭력 진압

백골단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곤봉을 휘두르고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쇠파이프나 각목 등을 사용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표적 체포 및 연행

시위 주동자나 적극 가담자를 표적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체포하고 연행했습니다. 시위 현장뿐만 아니라 학교 안이나 골목 등에서도 갑자기 나타나 학생들을 체포해 갔습니다. 체포 및 연행 과정에서 폭행과 욕설이 자행되었고, 연행 후에도 가혹 행위가 이어졌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최루탄 사용

시위 해산을 위해 최루탄을 사용했는데, 좁은 공간에 다량의 최루탄을 발사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습니다. 직격으로 최루탄을 맞아 실명하거나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백골단-백골단 최루탄사용-표적 체포-채증활동-폭력진압

채증 활동

사복 차림으로 시위대에 섞여 들어가 채증 활동을 했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의 얼굴과 행동을 몰래 촬영하여, 나중에 체포 및 처벌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6월 항쟁 당시, 백골단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은 수많은 시민들을 폭행하고 연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한열 열사-1987 6월항쟁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

1991년 4월, 명지대 학생 강경대 열사가 시위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 집단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고, 백골단의 폭력성이 다시 한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
강경대 열사 사건

 

 

'백골단' 명칭의 유래

'백골단'이라는 명칭은 정식 명칭이 아닌, 시위 진압 당시 착용했던 흰색 헬멧에서 유래된 별칭입니다. 흰색 헬멧을 쓴 사복 경찰들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마치 해골(백골)처럼 보인다고 하여, 시위대 측에서 '백골단'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당시 경찰은 '백골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꺼렸지만, 이미 대중에게는 '백골단'이라는 이름으로 각인되었습니다. 한편, '백골단'이라는 명칭이 청와대 경비대인 101경비단(백일단)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백골단의 복장과 장비

백골단의 전형적인 복장은 하얀색 또는 약간 누런색 오토바이 헬멧과 청카바로 불리는 청자켓,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기별, 지역별, 부대별(사복중대, 정복중대 내 사복조, 직원, 대원)로 복장과 장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헬멧

가장 흔하게 사용된 것은 챙 달린 오토바이 헬멧이었으나, 이후 챙이 제거되고 플라스틱 바이저가 달린 형태의 헬멧으로 바뀌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하키 헬멧과 유사한 형태를 착용하기도 했으며, 자체적으로 다른 모델의 헬멧을 사용하거나 락카칠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복장

초기에는 청자켓, 청바지 외에도 다양한 사복을 착용했습니다. 이후 점차 청자켓과 청바지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부대에 따라 추리닝 상의나 바람막이 등 개인 복장을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흑카바'로 불리는 흑색 데님 소재의 옷이 보급되기도 했습니다.

무장

초기에는 단봉이나 사과탄(작은 최루탄)을 주로 사용했으나, 1980년대 후반 시위가 격화되면서 죽도에 철근을 박거나 쇠파이프를 진압에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깨방' 혹은 '거북이 방패'로 불리는 타원형의 작은 방패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습니다.

백골단의 쇠퇴

백골단은 특정 시점에 해체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적 변화에 따라 일반 진압 부대와 외형적, 역할적 차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했습니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개선된 진압복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정복중대와 사복중대 모두 착용하게 되었고, 이는 사복중대의 역할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2000년경을 지나면서 사복중대들이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지 않게 되고, 특유의 오토바이 헬멧도 검은색으로 칠해 버리면서 일반적인 방석모와 구별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백골단'이라는 이름은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 다시 소환된 '백골단'

민주화 이후, 백골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고 경찰의 시위 대응 방식도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반공청년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하면서 '백골단'이라는 단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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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전 의원이 주선한 기자회견에 '반공청년단'이라는 단체가 등장했고, 이들은 스스로를 '백골단'이라고 칭했습니다.
  • '반공청년단'은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단체입니다.
  •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반공청년단'을 공식 명칭으로 하고, '백골단'을 예하 부대로 두어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감시 활동을 하는 '자경단'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김민전 의원은 "한남동 집회에서 만난 청년들의 열정에 감동해 돕고자 하는 선의"에서 기자회견을 주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야당은 김민전 의원의 기자회견 주선에 대해 "정치 깡패 동원", "백골단 부활"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했습니다.
  •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당 차원에서는 "당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 논란이 계속되자 김민전 의원은 사과하고 기자회견을 철회했습니다. "기자회견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배경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결론

'백골단'1980년대와 1990년대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사복 차림으로 시위를 진압했던 경찰 부대를 일컫는 별칭으로, 그 이름은 그들이 착용했던 흰색 헬멧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백골단은 폭력적인 진압 방식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민주화 이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백골단'이라는 단어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 단어의 사용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